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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경에 일본에서 세계최초로 데뷔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벤치마킹해서
아담이라는 사이버 가수라는 캐릭을 만들어 낸거로 기억을 한다
내가 다테교코를 처음 접한건 아담의 소식을 들으면서 잠깐 잠깐 나오는 소식정도였다고 할까?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도 활성화 되어있지 않은 시기였고 하다 보니 다테교코의 소식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1996년 데뷔 이후 라디오 방송 DJ부터 해서 앨범표지 모델,각종방송 출연등 왕성하게 했으나
당시 화제를 모았던거와는 반대로 크게 흥행은 하지 못하였었다.
물론 당시의 환경적인 요인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는데 다테교코의 경우
우리나라의 음악캠프와 같은 무대에 한번 나가기 위해선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몇 달간 매달려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가수라는 신분이지만 방송에는 나가기가 절대적으로 힘들었다.
(이는 cf까지 찍은 사이버 가수 아담역시 해당되는 부분으로 방송료나 cf출연료가
당시 들어가는 작업비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고 한다)
일단 TV에 나오지 못하는 만큼 대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어모으는 데 한계가 발생하였고
그로인해 수익성 악화..로 끝내 활동중단이 되었다.
지금 보면 조악한 그래픽에 불과하지만 당시는 정말 최고의 그래픽이였으며
훗날 나온 아담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킐리티를 보여주는 뛰어난 캐릭터였다라고 할까?
하지만 한국에서 아담은 다떼교코와는 반대로 꽤 흥행을 하였었다.
1집이 약 20만장 정도 팔리는 신인가수치고는 나름되루 괜찮은 성적을 얻으며 CF에도 나오고
2집 앨범까지 발매되며 사이버 류시아 등등의 지속적인 사이버가수가 양성되므로 인해서
다테교코도 1999년경 디키라는 이름으로 인티컴(장동건 ,나카무라 토오루 주연의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제작사)이라는 회사를 통해 한국에 진출한다.
이미 국내에는 1998년 부터 아담과 사이다 류시아등이 등장을 해있는 형편이라서
세계 최초의 사이버 가수라는 타이틀을 들고 등장을 했지만 디키는 큰 이목을 받지는 못했다.
사실 아담이 최초라는 타이틀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 등장한 사이다나 류시아는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던것이 사실이다. (아담이 받았던 것에 비하면 말이다)
가장 성공한 사이버가수로 꼽히는 아담의 경우도 2집을 끝으로 활동을 중단할 만큼
대중의 관심이 급속도로 식어갔으며 이는 대중과 교류를 할 수 없는 사이버가수의 태생적인 한계였다.
덕분에 이미 한국에서는 식어버린 사이버가수 열풍에 디키는 활동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체 그렇게
접어야 했던 안타까운 사이버가수였다고나 할까.
그나저나 이제 일본에서 활동을 재시작한다고 하던데 2번째 싱글음반은 어떤식으로 나오려나?
무척이나 기대가 되네.. 그때보다 훨씬 네트워크 적으로나 비쥬얼쪽으로나 모두 훨씬 발전되었으니
더구나 "이제 시대가 겨우 나를 따라잡았다"라고 말하는 만큼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으면 한다.